• 홈으로
  • 로그인
  • 공지
  • 사이트맵

메인 > 뉴스 > 국세

제목 세금 지원없어 탈선한 십자군과 엉뚱한 십자군 번호 376131
r

◆…1215년 영국왕 존이 귀족들의 강압에 따라 승인한 칙허장. 대헌장이 제정되면서 조세법률주의와 죄형법정주의가 싹트게 되었고 사법권이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루살렘이 이슬람군에 의하여 함락되자 그 당시 교황의 권위가 최고조로 올랐던 이노센트3세는 제4차 십자군(1202-1204)을 추진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프랑스 쪽 대륙에 있는 영국 영토를 빼앗는 전쟁을 하고 있었고, 영국의 리차드 1세는 자신이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존엄왕 필립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십자군 참여를 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 왕 또한 이 전쟁 때문에 같은 입장이었다.

영국 리차드1세가 죽은 후 왕이 된 동생 존은 프랑스 쪽 전쟁에서 계속지고 나서 영국에 가서 세금을 무리하게 과세하자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1215년에 대헌장이 작성되어 조세법률주의와 죄형법정주의가 싹트게 되었고 사법권이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각국 왕들이 십자군 참가를 외면한 가운데 플란다즈의 볼드윈 백작이 주도하는 북부 프랑스 기사단이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전과 달리 바닷길을 통해 아드리아 해변을 따라 내려와서 에게해를 거쳐 콘스탄티노플로 가게 되었는데 십자군 수송과 보급을 베네치아 상인들이 해주기로 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십자군을 실어 나르면서 돈을 벌었다. 십자군 1년 치 식량과 병력 약 2만5000명, 그리고 보급품을 수송해주고 돈을 받기로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를 받지 못했다. 그 대가로 달마시아 지방의 짜라이를 점령해 달라고 요청해 기독교 도시인 이곳을 십자군이 점령한 후 약탈을 하고 방화를 했다. 이들은 콘스탄티노플을 라틴제국으로 바꿔서 국가를 만들고 볼드윈을 황제로 세웠다.

십자군에 각국 왕이 참가하지 않으면서 세금지원을 받지 못하자 베네치아 상인들의 요구에 따라 십자군이 탈선을 해 원정을 한 것이다. 상인들의 농간으로 십자군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탈선한 십자군이 제4차 십자군이었다.

제5차 십자군(1217-1219)은 이집트 원정대였다. 제4차 십자군이 탈선을 하자 교황은 직접 십자군을 관리 감독하기를 원했다. 교황은 은화 3백만 파운드를 내고 3년간 유럽의 전체 성직자들에게 5%의 세금을 과세하도록 했다. 그리고 십자군에 참여할 경우 모든 세금을 감면하고 성직자는 3년간 성직을 유지하며 고리대금업도 처벌이 면제되도록 했다.

아울러 십자군에 병력과 물자를 제공할 경우 십자군과 동일한 혜택을 받도록 했다. 교황의 적극적인 선동에 의해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공작과 헝가리 왕이 주축이 되어 이집트 다미에타를 침략했다. 원래 의도는 이집트를 점령한 후 예루살렘과 교환하려는 엉뚱한 생각으로 이집트를 침략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제5차 십자군도 각국 국왕이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자비로 전비를 충당한 십자군이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제5차 십자군이 각국 세제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교황권위를 최고로 높이고 십자군 독려에 앞장섰던 이노센트3세는 1216년 7월에 병으로 죽었다. 문점식 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저작권자 ⓒ 조세일보(http://www.joseilb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