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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3차 십자군전쟁과 정교해진 세제 번호 375144

제3차 십자군전쟁(1189-1192)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에데사 백작령이 점령되자 영국의 리차드 1세, 프랑스의 존엄왕 필립, 독일의 프리드리히 1세가 참가하면서 시작됐다.

독일 프리드리히 1세는 십자군을 이끌고 소아시아 까지 갔으나 강을 건너다 익사해 독일 십자군 대부분이 귀국해 버렸다. 프랑스 필립2세는 잦은 병으로 고전했으며 프랑스 쪽에 있는 영국영토를 빼앗을 목적으로 먼저 귀국했다.

제3차 십자군은 존엄왕 필립이 먼저 귀국해 프랑스 쪽에 있는 영국영토를 뺏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는 세제개편을 하게 됐는데, 리차드 1세는 기사들이 소유하는 토지에 대해 20실링씩 병역면제세(Carucage)를 과세했다. 일반인에게는 전체 수입액의 1/4을 과세했다.

한편 프랑스의 존엄왕 필립은 지방집정관 제도를 도입해 1년에 3번씩 파리로 집정관들이 와서 세금에 관한 회계보고를 하도록 했다. 제3차 십자군 전쟁 시 약 43회에 걸쳐서 프랑스 교회에 대해 성직자세를 과세했고 상품에 대해 2% 간접세를 부과했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탈리아 상인, 대금업을 하는 은행가들도 과세의 표적이 됐다.

제2차 십자군이 끝나고 나서 이슬람 세력은 장기의 아들 누레딘이 물려받아 전쟁을 수행하게 되는데 1149년 안티오크 공작령을 되찾고 에데사 백작령도 완전히 되찾았다.

제3차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공백상태에서 누레딘이 이끄는 이슬람군의 반격은 계속됐다. 누레딘은 이슬람세계를 단결시키기 위해 성전(聖戰)이라는 지하드 이론을 펼쳤다.

이를 위해 누레딘은 이슬람 교육기관인 '마드라사'를 늘려서 이슬람 율법에 기반을 둔 성전 즉 지하드 이론 교육을 강화하면서 이슬람 통합에 앞장섰다. 그는 우편제도를 활성화하고 징세체계를 강화했는데 행정부에 재상이 있어서 징세업무를 담당하고 세수의 10%를 보수로 받았다. 이처럼 누레딘의 이슬람 군대는 세금이 잘 뒷받침되어 전투력이 크게 향상됐다.

이슬람 세력의 세금제도로는 하라즈, 지즈야, 쟈카트가 있다. 하라즈는 토지소유권과 경작권에대한 세금이며, 지즈야는 비이슬람인에 과세하는 인두세 세금이고, 쟈카트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공공사업을 위해 소득의 2.5%를 내는 종교세였다.

또한 전리품에 대해서는 1/5을 세금으로 징수했다. 이처럼 효율적인 세제를 수립한 누레딘은 이슬람 세력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부상했다. 이 이슬람 세력 중에는 이집트 정복을 완성한 살라딘이라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났는데 1174년 5월 누레딘이 병으로 죽으면서 살라딘이 누레딘의 뒤를 이어 이슬람군의 최고지도자로 제3차 십자군에 맞서게 된다.

제3차 십자군 원정대에서 홀로 남은 영국의 리차드 1세는 이슬람의 통치자 살라딘과의 협정을 맺어 라틴제국이 존속하게 하고 성지순례길을 보장 받으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육로로 귀국하는 길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1세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 보석금 마련을 위해 영국에서는 개인의 부동산에 대해 처음으로 세금을 거뒀다.

1185년 살라딘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일하고 끊임없이 라틴제국과 전쟁을 수행한 결과, 1187년 11월 2일 예루살렘을 마침내 점령했으나 제3차 십자군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193년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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