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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암살자 홍종우를 위한 변명 번호 37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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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수구파 정객으로 알려진 홍종우. (네이버 인물사전)

김옥균은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주동자로서 그 시대에 조선을 개혁하기 위해 혁명을 실행으로 옮겼던 사람으로 기록 되어 있지만 1894년 3월에 상하이에서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는 수구파 세력의 행동대원으로서만 대부분의 사람은 기억하고 있다.

김옥균은 박규수의 북촌 사랑방에서 개화의 꿈을 꾸었고 31살이 되던 해에 일본에 6개월간 체류하면서 아시아를 벗어나서 일본을 강국으로 만들려는 탈아론(脫亞論)의 주장자이자 조선을 지배하자는 조선정략(朝鮮政略)을 외쳤던 후쿠자와 유기치를 만나 조선의 개화 방안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일본의 힘을 빌려서 조선을 개화된 강국으로 만들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한편 홍종우는 김옥균보다 3살 어린데 19년간 같이 살았던 아내와 열 살 정도 된 어린 딸을 두고 홀로 입신양명의 꿈을 가졌다. 그의 나이 34살 때인 1888년 일본에 건너가 2년 동안 머물면서 일본 메이지 유신의 거물이자 급진적인 자유주의자로서 권력에서 밀려나 있던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와 교류했는데, 그의 추천으로 유럽문명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그는 서구문명을 배워 관리가 되려는 생각으로 서구문명을 배우기 위해서는 본거지인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보다는 프랑스를 배워 조선을 아시아의 프랑스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프랑스에서 3년간 머무는 동안 기메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서구문명을 배우고 조선을 떠난 지 5년 만에 귀국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그의 귀국을 보지 못하고 그 해에 세상을 떴다. 19년 동안 같이 살았던 아내와 딸을 버려두고 유학을 갈 정도로 굳은 결심으로 서구문명을 배워서 조선 개화에 앞장서려 했던 홍종우.

홍종우는 김옥균이 생각했던 조선과 청나라 일본이 공존해 화합하면서 서양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그는 군주제 아래서 국내 산업을 발달시키고 재정을 확충한 후 군사력을 키워 부국강병의 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김옥균은 세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토지세를 개혁하는 지조법(地租法) 즉, 세제개혁을 통해 국가 재정권을 장악한 뒤 혁명을 완수하고 기업은 결손이 나더라도 국가가 보전할 정도로 지원해 기업을 발전시켜서 국가를 개조하려고 했다.

홍종우는 상업을 발전시켜서 부강한 국가를 만들려는 점에서는 김옥균과 생각이 같았으나, 개화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군주제 중심의 독립국가 유지를 목표로 한 점은 달랐다.

그는 프랑스 체류 생활을 마치고 귀국길에 김옥균과 박영효를 암살하러 일본에 온 이일직(李逸稙)을 만나서 김옥균 암살을 사주 받았다. 그래서 개화파 홍영식의 친척이라고 속이고 김옥균에 접근해 친분을 쌓았다. 홍종우는 이홍장을 만날 명목으로 김옥균을 상하이로 유인해 1894년 3월 25일에 암살하였다.

김옥균을 암살한 후 그는 관료의 길이 열렸는데 승지, 경찰청장 격인 경무사 책임자가 되었고 1899년에 의정부 총무국장이 되어 보부상들에게 상업적 특권을 주는 상무사규칙(商務社規則)을 반포했다.

이는 홍종우가 꿈꿨던 비즈니스를 통해 재정자립을 주장한 그의 건의를 고종이 받아드렸기 때문이었다. 또한 1900년에는 법부(法部) 사리국장(司理局長)을 거친 후 재판장으로서 법조계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홍종우는 독립협회와 대립각을 세우고 왕정을 수호하는데 앞장섰으나 일본의 조선침략이 점차 심해지자  이재수의 난이 끝난 지 2년 후 마지막으로 제주목사가 됐다 역사에서 사라졌다.

일본을 통해 개화를 하려고 했던 좁은 안목으로 세상을 보았던 김옥균은 세제 개혁이 혁명의 핵심이라고 보았지만,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고 김옥균보다 더 큰 안목으로 출발해 프랑스까지 다녀왔던 홍종우는 넓은 세상을 보았음에도 불구, 군주제 수호가 첫째이고 세제개혁은 관심이 없었다.

부국강병의 국가를 통해 조선을 독립국가로 유지하려고 한 점이 달랐다. 김옥균과 홍종우 모두 개화가 조선에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같았으나, 방법론이 달라 프랑스에서 개화에 대해 더 많이 배웠던 홍종우는 국가의 미래보다는 군주제 유지를 위한 암살자로만 기억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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